Thursday, February 12, 2015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0. 열면서

요즘 트위터에서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라는 태그가 유행하고 있고, 저는 거기에 동참하지 않겠다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은 상당한 (대부분 부정적인)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반향의 대부분은 별반 대꾸할 가치가 없는 정념의 발산이었지만, 진중하게 반론을 제기하신 분도 간혹 계셨습니다.


반론 트윗 내용을 연결했습니다: 
"흥미로운 논의군요.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선 한 여성이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보단 한 남성의 선언이 훨씬 큰 파급력을 지닙니다. 기득권층이기 때문이죠. 흑인을 지지하는 백인들처럼. 이런 상황에선 선언이 가벼워질수록, 하나의 패션이나 유행에 가까울수록, 여성운동에겐 전략적으로 좋습니다. 지금처럼 단순한 선언 조차 무겁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운동에 매우 장애가 되지요. 가벼움은 무기입니다. 그러하기에 자신이 "진짜 페미니스트"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선언을 저어하는 것은, 1. 현대 한국에서 이 선언이 다양한 측면으로 얼마나 무거운지 반증하며, 2.선언을 더욱 무거이 만드는군요. 사회운동은 어디까지나 숫자의 문제이며, 허수란 없습니다. 페미니즘이 가벼워 유행이 된다면 그건 전략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큰 효과를 가져옵니다."
제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야겠다 싶어서 이 포스트를 씁니다.

1.  하나의 일화

"흑인을 지지하는 백인" 얘기가 나왔으니, 그와 비슷한 일화를 하나 소개 드리겠습니다.

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건 낯간지럽지만,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합니다. 전 대학 시절부터 미국 인종관계에 관심이 많아 그때부터 관련 활동에 투신해왔습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한국과 한국계 미국인에 대한 제 블로그를 운영한지는 거의 10년이고, 졸블로그가 나름의 인기를 모아 제법 영/미 주류 언론에도 소개되고 기고도 하고 있는 위치입니다. 즉, 최소한 아시안 아메리칸 사회에서 전 순전한 필부필부는 아니란 말씀입니다. 곧 설명드릴 사건에 대한 배경이 필요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런 설명을 드립니다.

콜베어 리포트 배너입니다.
(source)

미국 인기 시사 코메디 프로그램 중 "콜베어 리포트"라는 것이 있습니다. 작년에 이 프로그램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을 차별한다고 보일 소지가 있는 개그가 나왔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곧 아시안 아메리칸 활동가들이 반응했고, 전선이 짜여졌습니다. 강경파는 "이것은 차별이다, 사과해야한다"라는 주장이었고, 제가 속한 온건파는 "전체적 맥락을 보면 차별할 의도가 보이지 않으니 넘어가야한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강경파들은 강경파답게 온건파에게 "배신자"라며 맹공했습니다. 제게도 엄청난 욕설과 비난이 쏟아졌죠. 활동하면서 당연히 있는 일이니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를 가장 극렬하게 공격한 사람들은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아니라, 아시안 아메리칸 운동에 끼어있는 백인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나는 저것을 차별로 보지 않는다"라고 했더니 백인활동가들이 저보고 "너는 백인 우월주의에 찌들은 인종차별주의자다"라고 하기도 했고요. 평생 1초도 인종을 이유로 차별받아보지 않은 이들이 20년 가까이 활동을 해온 저에게 "네 생각은 상관없고, 우리가 이것은 차별이라고 정했으니 받아들여라"라고 주장하는, 지극히 우스운 꼬락서니였습니다.  

제가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태그를 달 수 없는 이유는, 저런 백인 활동가의 우스꽝스런 모양새를 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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