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ugust 10, 2014

찜찜한 그녀

::스포주의::

주변에서 스파이크 존즈의 영화 "Her"에 열광하는 반응이 여럿 보인다. 하지만 내가 Her를 보았을 때는, 잘 만든 수작이나 왠지 찜찜하다는 감상이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좀 시간이 걸렸다.

왜 찜찜했는가. 아마도, 티어도어와 사만타의 관계가 어딘가 비정상적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으나, 티어도어와 사만타의 관계는 사랑이라고 하기엔 뭔가가 조금 뒤틀려있다. 언제나 보던 낯익은 광경이 어딘가 살짝 바뀌어 있을 때 알게모르게 느껴지는 껄적지근함. 이게 나의 감상이 아니었나 싶다.

무엇이 빠져있는가, 티어도어와 사만타의 관계에선? 사만타에 대한 "호기심"이 빠져있지 않은가 한다. 사랑은 하면 할 수록 상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Her는 오직 티어도어의 감정에만 집중한다. "실제"로는 티어도어가 사만타와 대화하며 사만타에게 오만 질문을 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영화에선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사랑한다면,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아내는 음악가다. 아내와 만나기 전 음악의 세계는 나에게 낯선 것이었다. 우리가 만나 오래 교제할 수록 나는 아내와 음악과의 관계에 대해 더욱 더 많은 질문을 했다. 어떤 음악이 좋은가. 왜 좋은가. 그 음악을 연주할 때는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사랑할 수록 사랑하는 이의 자아를 형성하는 큰 부분에 대해 더 궁금해졌으며, 답을 깊이 알게될 수록 더 깊이 사랑했다.

사만타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이 "여성"과 관계를 맺는 티어도어는, 왜 더 사만타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것인가? 티어도어가 사만타에게 그녀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나라도 던졌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오직 사만타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만 집중했다. 그리고 사만타의 사랑이 인간이 일반적으로 하는 사랑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티어도어가 알아버린 순간, 그와 사만타의 관계는 무너져버린다.

사랑의 대상에 호기심을 가진다는 것은 그 대상을 독립된 인격체로 취급하는 첫 걸음이다. 그 대상이 나를 향한 마음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만의 취향, 특성, 세계관 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에 대해 더 알고자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누군가를 완전히 사랑하기 위한 선결과제이기 때문이다.

티어도어는 사만타를 사랑했는가? 본인은 그렇게 느꼈을지 모르나,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그렇다라고 선뜻 말하기 힘들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몇천명에게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닌가. 티어도어가 이 사실에 무너져 내렸다는 것은, 독립된 개체로서의 사만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서의 사만타에 대한 별다른 고찰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티어도어에게 사만타는 인격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영화가 끝나며, "그녀"라는 영화제목을 떠올리면서 찝찝함은 배가된다. "Him"--그 남자, 그 녀석, 그 "사람"--이었다면 같은 수준의 영화가 나타났을까? 사만타는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지니고 있을 뿐, 기실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하지만 티어도어는 별다른 고찰 없이 사만타를 여성이라고 간주하며, 인격체가 아닌 그의 감정적 욕구에 반응하는 객체로만 간주한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컴퓨터 프로그램이 "사무엘" 같은 이름을 사용하며 굵고 깊은 목소리로 대화했을 경우에도 티어도어는 그렇게 쉽게 객체화할 수 있었을까? 그런 객체화에 관객들은 같은 수준으로 열광했을까? 생각해볼 일이다.